
한동안 멍 때리는 일이 유행인 때가 있었다. 멍 때리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때 어머니로 부터 등짝을 많던 시절에 비하면 많이 개화된 시절이다. 그 시간을 죽이는 일이 어떤 시인에게는 제비꽃을 부르고 무덤을 부른다. 시란 대체로 -물론 아닌 경우도 있지만 - 짧아서 좋아하지만 시 쓰는 일은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닌 것 같아 쉽게 좋아할 일은 못되었다. 그리고 세상에는 너무나 좋은 시가 많아 감탄과 질투와 조바심과 부러움을 잔뜩 발라가며 읽기에도 시간이 부족했다. 아니 시간이 부족해서 시를 쓰지 못한다라고 핑계를 삼곤 한다. 그런 시들 중 한 편인, 가볍게 읽히지만 가볍지 않은 시 한편 읽어보자. 날라리 한량이 되어서 말이다.
아지랑이 소야곡 유형진
어렸을 적에 엄마가 그랬어 땀 안 흘리고 멍한 표정으로 앉아서 시간 죽이는 것들, 전부 다 날라리 한량이라고
나는 커서 날라리 한량이 되어 눈 오는 창밖을 바라보며 제비꽃을 기다리고 있어 제비도 아닌 제비꽃을 제비꽃은 무덤가에 잘 피어 있지
가만 보면 어리고, 여리고, 아무것도 모르고 작고 순정한 것들은 전부 다 그래 무덤 옆에서만 핀다 꼭 죽음을 먹고 자라는 것처럼
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 말 안 듣기로 소문난 아이였지만 혼자 멍하니 들에서 피는 아지랑이를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났어 미래의 내 모습이 보여서 땀 흘리지 못하고 고통스럽게만 한, 어떤 날라리 한량이 되어 제비꽃을 들여다보며 울고 있어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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